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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투식량



# 고려시대 전투식량: 전장에서 생존을 책임진 병사들의 식문화

**전쟁은 병참에서 승부가 갈린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무기가 뛰어나고 전략이 정교해도 병사들이 굶주린다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 특히 **중세 국가였던 고려**는 거란, 여진, 몽골, 왜구 등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받았고, 이에 따라 전쟁이 반복되었던 나라였다. 그러한 전쟁 속에서 고려군이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전투식량**, 즉 야전에서 병사들이 섭취한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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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려시대의 전쟁 상황과 전투식량의 필요성

### 1-1. 빈번한 전쟁

고려는 918년에 건국된 이후 약 500년간 존재하면서 다양한 전쟁을 겪었다. 거란의 1~3차 침입(10~11세기), 여진과의 전투, 몽골과의 30년에 걸친 전쟁(13세기), 그리고 고려 말기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까지 고려는 국경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전투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속적인 군량 공급과 효율적인 식량 운용**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 1-2. 군량의 전략적 가치

군사적 충돌이 있을 때 가장 먼저 고려된 것은 **식량 확보**였다. 병사들이 배를 곯는다면 사기 저하는 물론이고, 장기전에서의 전투 지속 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려 정부는 **전투식량의 비축, 저장, 운반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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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려시대 전투식량의 종류

### 2-1. 포장 곡물: 밥보다 중요한 쌀과 보리

전투에 나선 병사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섭취한 것은 **곡물**이었다. 특히 **쌀**, **보리**, **기장**, **조**와 같은 저장성이 강한 곡물은 전투식량의 기본이었다. 이 곡물들은 출정 전 건조한 상태로 **포대나 항아리, 나무통**에 넣어 운반되었고, 야전에서는 물과 함께 끓여 죽이나 밥으로 조리되었다. 일부 곡물은 미리 쪄서 말린 형태로 준비되기도 했다.

### 2-2. 건조 식품: 말린 고기와 생선

고려시대에는 **건조육(말린 고기)**이나 **어포(건어물)**가 주요한 전투식량 중 하나였다. 말린 고기는 **소고기, 돼지고기, 말고기, 개고기** 등이 포함되며, 해안 지역에서는 **건어물(명태, 조기, 갈치 등)**이 함께 보급되었다. 건조된 육류는 보존이 용이하고 단백질 섭취를 돕기 때문에 병사들의 체력 유지에 매우 중요했다.

### 2-3. 떡과 병과류

**찰떡, 절편, 증편, 약과**와 같은 떡류는 전투 전 사기 진작과 단기적인 고열량 보급용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특히 찰기가 있는 떡은 쉽게 상하지 않으며, 포만감이 높아 병사들에게 인기 있는 전투식량이었다. 떡은 귀족 군이나 정예군 중심으로 제공되었으며, 일반 병사들은 주로 곡물과 죽에 의존하였다.

### 2-4. 된장, 간장, 김치: 발효 음식의 위력

**된장과 간장, 김치**와 같은 발효 식품은 장기간의 전투에서도 **맛과 영양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귀중한 식량이었다. 특히 된장은 고기와 함께 끓여 **된장국**으로 섭취되었으며, 김치는 장기 보존이 가능하여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발효 식품은 고려시대에도 **군사 식단의 필수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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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고려의 전투식량 보존과 조리 방식

### 3-1. 건조와 염장 기술의 발달

고려시대에는 자연 조건을 이용한 **건조**와 **염장(소금에 절이는 방식)** 기술이 발달하였다. 특히 **염장 고기**는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간단한 조리만으로도 식사가 가능했다. 건조 생선과 함께 병사들은 별도의 불 없이도 간단히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며, 이런 방식은 이동 중에도 효율적이었다.

### 3-2. 죽과 국의 간편 조리

야전에서는 불을 피우기 어렵기 때문에 **죽이나 국 형태**로 식사를 간편하게 준비하였다. 곡물을 물에 넣고 끓인 죽은 빠르게 조리할 수 있고, 소화가 잘 되며 체력 회복에 효과적이었다. 여기에 된장이나 말린 야채를 넣어 영양을 보충하였다.

### 3-3. 장비: 솥, 솥뚜껑, 국자

군사 식량 조리에 필요한 **휴대용 솥과 솥뚜껑, 국자, 나무젓가락** 등은 출정 시 함께 제공되었다. 큰 규모의 군대에는 **전담 취사병**이 동행하여 병사들의 식사를 관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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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군량 운반 체계와 배급 시스템

### 4-1. 군량미 창고: 사창과 진창

고려는 전략 요충지마다 **군량미 창고(사창, 진창)**를 설치하여 전시 또는 비상시에 대비하였다. 이들 창고에는 곡물, 염장 식품, 건조 음식 등이 저장되어 있었으며, 전투 발생 시 신속히 병력에게 배급되었다.

### 4-2. 운반 방식: 우마차와 인력 운송

군량은 주로 **소나 말에 실은 수레**, 혹은 **병사들의 직접 운반**으로 전장에 전달되었다. 장거리 이동에는 말이 중요하게 사용되었으며, 강이나 해상을 이용한 **수운(수로 운송)**도 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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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특수 전투식량과 긴급 대응

### 5-1. 전시 비상식: ‘조미’와 ‘고형죽’

전투 중 고립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조미(볶은 곡물 혼합물)**나 **고형죽(미리 조리한 죽을 말려 고형으로 만든 것)**이 제공되었다. 이는 물만 부어도 섭취 가능하며, 휴대가 간편해 정찰병이나 소규모 부대에서 활용되었다.

### 5-2. 전투 전 의식용 음식

출정 전에는 **제사 음식을 나누는 의식**이 있었으며, 이때 사용된 음식은 병사들에게 사기를 북돋는 역할도 했다. 떡, 술, 고기 등이 간단히 나누어졌으며, 이는 정신적 무장에도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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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고려 전투식량의 의의와 현대적 교훈

고려시대 전투식량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군사 전략의 일환**이었다. 병사들의 사기와 체력을 유지하고, 장기전을 견디게 만드는 핵심 요소였던 전투식량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전쟁 준비성 강화**: 창고 운영과 식량 비축으로 빠른 대응 가능  
- **보존식 기술의 선진화**: 건조와 염장 방식은 오늘날에도 활용  
- **민간과의 연계**: 백성들의 협조를 통해 군량 확보  
- **현대 군대에 응용 가능**: 고열량, 고효율 식량 시스템의 원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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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고려시대 전투식량, 전장을 지탱한 밥상 위의 군사력

전투는 무기로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고려시대의 병사들은 밥을 통해 싸웠고, 음식을 통해 승리했다.** 전투식량은 무기보다 오래 살아남는 전쟁의 흔적이며, 전장의 생존을 책임진 병사들의 현실이었다. 고려의 전투식량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국가와 병사의 생존 전략**이었으며, 오늘날의 군사 식량 체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고려의 전투식량은 **역사 속의 군사 문화**이자, **한국 음식 문화의 뿌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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